무당내력 < 조상거리 >
아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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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0:08
조상거리
우리 굿에서 가장 특이한 거리가 바로 조상거리다.
하지만, 어떤 책을 보아도 조상거리의 기원에 대하여 나오는 데가 없다.
그러나 <단군세기>중 부루단군편을 보면 삼신상제만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 천제를 올렸던 한인천제와 한웅천왕 그리고 단군왕검과는 달리 부루단군은 천제를 올리는 과정에서 아버지인 단군왕검도 함께 청배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상고시대엔 요천(繞天)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요천이란 멀리 지나간 일을 되새겨서 근본에 보답함은 곧 금생(今生)을 거듭하여 뒤에까지 계속하여 보전코자 하는 가르침이라 했다. 이것이 바로 예맥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마한의 소도(蘇塗)라는 제사의식이다. 이것들을 종합하면 소도라는 신성한 곳에서 동쪽을 향하여 재물을 바치고 북을 치며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서 뜨는 해와 달을 맞이하는 요천의식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
이 요천의식이 오늘날의 굿으로 발전하였고 삼신상제를 비롯한 천신에게만 제를 올리던 것을 부루단군이 아버지인 단군왕검을 함께 추모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천신을 숭배하는 요천의식인 굿에 인간을 천신과 함께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으로 부루단군은 자신의 아버지인 단군왕검을 신격화 한 것이라고도 해석이 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조상거리라는 이름으로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상거리는 굿거리 중에서 유일하게 제가 집(굿을 하는 집) 사람들과 바로 연결되는 그 집 조상들을 모시는 거리로 굿을 의뢰한 집에서 가장 기다리던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살아생전에 할 말을 다하고 살지를 못하므로 살아생전에 자손들에게 하지 못하였던 말들을 무녀의 눈과 입을 통하여 자손들을 만나 가슴에 맺힌 말들을 풀어 놓고 자손들과 살아생전에 맺힌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해원거리다.
그런 이유로 조상거리는 무녀와 제가집이 함께 얼싸안고 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무녀가 조상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 우리민족의 심성을 잘 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조상거리에서 제가 집 사람들을 많이 울려야만 뛰어난 무당, 큰무당이라고 할 만큼 제가 집 사람들을 많이 울리고 같이 우는 굿거리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화해동심(和解同心)’ ‘해원상생(解寃相生)’이라고 압축할 수가 있다.
조상거리는 산 자가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조상거리를 하기 위하여 굿을 하는 사람도 있다. 즉 조상님과 대화를 하면서 실컷 울고 싶어서 굿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녀들 중 영(靈)이 부족한 무녀들은 그 집의 조상들을 다 불러들이지를 못한다. 굿을 하는 제가 집에서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조상님을 빠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조상거리는 어려운 굿거리이다.
굿의 성패는 조상거리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도 있듯이 조상님이 도와야 자손들의 일이 잘 풀리는 것이다. 그러니 조상님을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초청을 하여 대접을 하는 몫은 무당의 몫이기 때문에 잘되면 자기 정성이요, 못 되면 무당 탓이다. 우리의 굿거리 중 큰 신을 모시는 칠성제석거리 등이 큰 거리이라면 이 조상거리는 큰 거리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아주 훌륭한 거리이다.
우리 굿에서 가장 특이한 거리가 바로 조상거리다.
하지만, 어떤 책을 보아도 조상거리의 기원에 대하여 나오는 데가 없다.
그러나 <단군세기>중 부루단군편을 보면 삼신상제만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 천제를 올렸던 한인천제와 한웅천왕 그리고 단군왕검과는 달리 부루단군은 천제를 올리는 과정에서 아버지인 단군왕검도 함께 청배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상고시대엔 요천(繞天)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요천이란 멀리 지나간 일을 되새겨서 근본에 보답함은 곧 금생(今生)을 거듭하여 뒤에까지 계속하여 보전코자 하는 가르침이라 했다. 이것이 바로 예맥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마한의 소도(蘇塗)라는 제사의식이다. 이것들을 종합하면 소도라는 신성한 곳에서 동쪽을 향하여 재물을 바치고 북을 치며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서 뜨는 해와 달을 맞이하는 요천의식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
이 요천의식이 오늘날의 굿으로 발전하였고 삼신상제를 비롯한 천신에게만 제를 올리던 것을 부루단군이 아버지인 단군왕검을 함께 추모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천신을 숭배하는 요천의식인 굿에 인간을 천신과 함께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으로 부루단군은 자신의 아버지인 단군왕검을 신격화 한 것이라고도 해석이 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조상거리라는 이름으로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상거리는 굿거리 중에서 유일하게 제가 집(굿을 하는 집) 사람들과 바로 연결되는 그 집 조상들을 모시는 거리로 굿을 의뢰한 집에서 가장 기다리던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살아생전에 할 말을 다하고 살지를 못하므로 살아생전에 자손들에게 하지 못하였던 말들을 무녀의 눈과 입을 통하여 자손들을 만나 가슴에 맺힌 말들을 풀어 놓고 자손들과 살아생전에 맺힌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해원거리다.
그런 이유로 조상거리는 무녀와 제가집이 함께 얼싸안고 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무녀가 조상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 우리민족의 심성을 잘 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조상거리에서 제가 집 사람들을 많이 울려야만 뛰어난 무당, 큰무당이라고 할 만큼 제가 집 사람들을 많이 울리고 같이 우는 굿거리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화해동심(和解同心)’ ‘해원상생(解寃相生)’이라고 압축할 수가 있다.
조상거리는 산 자가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조상거리를 하기 위하여 굿을 하는 사람도 있다. 즉 조상님과 대화를 하면서 실컷 울고 싶어서 굿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녀들 중 영(靈)이 부족한 무녀들은 그 집의 조상들을 다 불러들이지를 못한다. 굿을 하는 제가 집에서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조상님을 빠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조상거리는 어려운 굿거리이다.
굿의 성패는 조상거리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도 있듯이 조상님이 도와야 자손들의 일이 잘 풀리는 것이다. 그러니 조상님을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초청을 하여 대접을 하는 몫은 무당의 몫이기 때문에 잘되면 자기 정성이요, 못 되면 무당 탓이다. 우리의 굿거리 중 큰 신을 모시는 칠성제석거리 등이 큰 거리이라면 이 조상거리는 큰 거리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거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아주 훌륭한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