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각시, 처녀귀신

손각시, 처녀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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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각시, 처녀귀신

사나운 원귀(寃鬼)로는 손각시를 빼놓을 수 없다. 
손각시는 ‘손말명’ ‘왕신’ ‘처녀귀신’이라고도 하는데, 혼기(婚期)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어서 된 원한에 사무친 악귀로서 곧 처녀귀신이다. 

이 처녀귀신은 자기 또래의 혼기가 차 있는 처녀에게 붙어 괴롭히고 해를 입힌다.

특히 왕신은 집안을 망치기까지 하여 특별히 가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처녀에게 손각시가 붙으면 병이 들거나 다른 괴로움을 당해 시집을 가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을 통해 방액(防厄)을 하기도 한다. 

마루 한 귀퉁이 벽에 작은 선반을 매고 그 위에 작은 오지단지나 나무상자를 신체로 모시거나 또는 문갑 같은 데에 왕신을 모시는데, 새로 집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으면 그 앞에 먼저 바친다.

가족 중에 출가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먼저 왕신에게 고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 지금의 영등포구 양평동4가 한강변에 위치하였던 선유봉(仙遊峰, 1962년 양화대교 건설 때 깎아 허물어짐)의 손각시를 처녀들이 많이 신봉하였다 한다.

이곳 처녀들은 노랑종이에 다홍치마를 입힌 새별산이란 신을 받들고 있었다.

이 새별산은 일명 손각시귀(孫閣氏鬼)로서 구전(口傳)에 의하면 손씨(孫氏)집에 규중처녀가 있었는데 출가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 원혼을 모셔 놓았는데 이를 신봉하는 가정에서는 규녀(閨女)가 있으면 출가시키기에 앞서 여무(女巫)를 초청하여 여탐굿(豫探굿)을 한 뒤에 출가시켰다. 

손각시 옷을 만들 때는 비단필의 머리부분을 끊어 처녀를 만들어서 신상(神箱) 속에 넣고 새로운 음식이
생기면 손각시 신상(神像)에 먼저 바쳤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혼기가 된 처녀가 죽게 되면 그 혼령이 손각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매장(埋葬)할 때 남자의 옷을 입히거나 사람의 왕래가 많은 길목에 묻어 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남성과 접촉을 시키는 것으로 위안을 해주자는 것이며, 왕래 많은 길목에 묻는 것은 많은 남성들이 지나다니는 것으로 위안을 삼게 하려는 것이다.

강원도 삼척시 원남면 갈남리에는 애랑이 전설이 있다. 이 마을에 덕배와 애랑이라는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덕배가 애랑이를 미역이 많이 있는 애바위라는 섬에 배로 태워다 주었다.

덕배를 보내고 미역을 뜯던 애랑이는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뱃일을 나가면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애랑이의 혼을 달래기 위해 바닷가 언덕에 당집을 짓고 제를 지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어부 한 명이 바다에 욕을 하고 오줌을 누었다. 이후에 마을의 배가 바다에 나가면 만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10월 첫 오(午)날 에 제를 지내면서 이날 남근목을 깎아 당집에 바쳤다 고 한다.

이는 애랑이의 원혼을 달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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