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과 샤머니즘(1)편
아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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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22
샤먼shaman과 샤머니즘shamanism
1692~95년 사이, 러시아 페터대제大帝의 사신 자격으로 모스크바에서 북경까지 여행을 하던,
폴란드사람 '이데스'라는 상인이 있어서,
바이칼 호수 서북부에서 퉁구스족의 희한한 제례의식을 보고,
제례의 이름이건, 제례 주재자의 이름을 물으니,
'샤먼shaman'이라 하였고,
1704년, 유럽에 그의 여행기가 출판되면서,
~퉁구스족 '샤먼shaman'이 주도하는 제례의식을 학술용어로 '샤머니즘shamanism'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이에, 학자들이 정리하길,
일반인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샤먼shaman이 제의에 임하여, 몸을 떨며,
괴성을 지르며 황홀경•무아지경(trans)과 같은 엑스타시excitacy(접신)의 이상심리상태에 들어가서, 초자연적 존재(신령•정령•사령 등)와 직접 접촉•교류하여,
그 상태에서 예언•탁선•복점•치병•제의 등을 행하는 제의~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 정의 한 것이죠.
또한,
샤머니즘의 존재 가능성을 청동기시대로 유추하며,
북아시아•동아시아•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남,북 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지에 분포하는 원초적 문화•종교형태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다른 종교현상이 복합되어 있기도 하나,
북아시아의 샤머니즘이 가장 고전적·전형적인 것으로 정돈하고 있는 것이죠.
대륙의 역사를 보면,
巫는 씨•부족국가와 출현을 함께 하니,
제정일치의 상商나라는 巫(巫成•商巫)가 정치• 종교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은殷나라에 이르러서,
巫는 귀족정도의 위치로 격하되기 시작하였지요.
주周나라에 이르러,
제정분리가 일어나 巫의 직무는 무巫•축祝•사史 등으로 관료화되어 巫의 정치적 위세와 권력이 축소되었던 것이죠.
원시 유가儒家 사상을 앞세운 한漢나라(BC 202~AD 220)에 이르러,
다양한 정치이론, 점법 등이 정돈되면서,
巫는 권력구조에서도 배척되었고,
배운 사람들의 입맛을 갖춘 유儒•도道•불佛이 권력에 밀착되면서,
巫는 서서히 민간의 토착신앙으로서 명맥을 이어온 것이죠.
이처럼, 무의 격하는 아득한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민간 토착신앙의 주재자인 巫들이 사회 계급 안에서 열등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지요.
대륙의 유교적 제사도 허례허식으로 비난 받던 시기가 있었으니,
열악한 환경의 무격들의 행위는 ~무리를 지어 백성을 농락하는 작당들~로 비난 받으면서,
무리 당黨 자를 붙인 '무당巫黨'으로 기록되는데, 이후로 집 당堂가 붙여져 '무당巫堂'으로 통칭되었던 것이니, ~무당 집은 역전 앞~이라 하는게지요.
세월에, 유儒•불佛•도道에 밀린 무당의 사회적 위치는 천민이 되어,
함축적으로 무당이라는 말에 경멸의 의미도 포함돠게 되었으니,
~뉘의 죄~인 것인가요?
[샤먼뉴스]
폴란드사람 '이데스'라는 상인이 있어서,
바이칼 호수 서북부에서 퉁구스족의 희한한 제례의식을 보고,
제례의 이름이건, 제례 주재자의 이름을 물으니,
'샤먼shaman'이라 하였고,
1704년, 유럽에 그의 여행기가 출판되면서,
~퉁구스족 '샤먼shaman'이 주도하는 제례의식을 학술용어로 '샤머니즘shamanism'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이에, 학자들이 정리하길,
일반인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샤먼shaman이 제의에 임하여, 몸을 떨며,
괴성을 지르며 황홀경•무아지경(trans)과 같은 엑스타시excitacy(접신)의 이상심리상태에 들어가서, 초자연적 존재(신령•정령•사령 등)와 직접 접촉•교류하여,
그 상태에서 예언•탁선•복점•치병•제의 등을 행하는 제의~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 정의 한 것이죠.
또한,
샤머니즘의 존재 가능성을 청동기시대로 유추하며,
북아시아•동아시아•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남,북 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지에 분포하는 원초적 문화•종교형태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다른 종교현상이 복합되어 있기도 하나,
북아시아의 샤머니즘이 가장 고전적·전형적인 것으로 정돈하고 있는 것이죠.
대륙의 역사를 보면,
巫는 씨•부족국가와 출현을 함께 하니,
제정일치의 상商나라는 巫(巫成•商巫)가 정치• 종교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은殷나라에 이르러서,
巫는 귀족정도의 위치로 격하되기 시작하였지요.
주周나라에 이르러,
제정분리가 일어나 巫의 직무는 무巫•축祝•사史 등으로 관료화되어 巫의 정치적 위세와 권력이 축소되었던 것이죠.
원시 유가儒家 사상을 앞세운 한漢나라(BC 202~AD 220)에 이르러,
다양한 정치이론, 점법 등이 정돈되면서,
巫는 권력구조에서도 배척되었고,
배운 사람들의 입맛을 갖춘 유儒•도道•불佛이 권력에 밀착되면서,
巫는 서서히 민간의 토착신앙으로서 명맥을 이어온 것이죠.
이처럼, 무의 격하는 아득한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민간 토착신앙의 주재자인 巫들이 사회 계급 안에서 열등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지요.
대륙의 유교적 제사도 허례허식으로 비난 받던 시기가 있었으니,
열악한 환경의 무격들의 행위는 ~무리를 지어 백성을 농락하는 작당들~로 비난 받으면서,
무리 당黨 자를 붙인 '무당巫黨'으로 기록되는데, 이후로 집 당堂가 붙여져 '무당巫堂'으로 통칭되었던 것이니, ~무당 집은 역전 앞~이라 하는게지요.
세월에, 유儒•불佛•도道에 밀린 무당의 사회적 위치는 천민이 되어,
함축적으로 무당이라는 말에 경멸의 의미도 포함돠게 되었으니,
~뉘의 죄~인 것인가요?
[샤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