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과 샤머니즘 (3)편

샤먼과 샤머니즘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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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과 샤머니즘 (3)편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반도에 자리하던 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 기초하지요.

‘삼국사기' 남해왕(BC50~24)의 기록에 김대문이 설하기를, ~남해왕을 차차웅, 자충이라고도 하는데,

‘자충'은 방언으로는 무당이라는 뜻으로,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주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무당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다가,
마침내 존경받는 어른을 자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나아가 혁거세의 적자이자,
'자충'인 남해가 신라 2대 왕위에 올랐으니,

巫가 왕이 된 것으로, 왕이 된 남해자충이,
~누이 아로에게 혁거세의 제를 주재케 했다~했으니,

왕이 제사장을 아래로 내림하는 '무의 신분격하'를 볼 수 있지요.

'사기•유사'는,
기우제 같은 경우에 무당을 동원하여,

기도나 제사(굿)을 한 기록과 예언•저주의 단편을 기록하기는 하나,

무당이 제사장의 권한으로 국가와 백성의 추앙을 받으며 제(굿)를 거행했다거나,
무의례巫儀禮에 관한 기록은 미미하죠.

삼국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역사에 나타나는 무당의 활동은 분명 다양했을 것이나,

유학자 김부식과 일연스님이 巫를 다룰 이유가 없었겠기에, 누락되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

'삼국사기 악樂조'의 신문왕(689년) 기록이나, '잡지'를 보니.

~가척笳尺(피리 부는 사람), 금척琴尺(거문고 연주하는 사람), 무척舞尺(춤추는 사람), 가척歌尺(노래 부르는 사람)이라, 신라때의 악공樂工은 모두 '척尺'이라~ 하였다.

이 글에서 '척尺'은 춤•노래•악기 등의,
기종妓種에 따른 기예인의 명칭을 달리 부르고 있음을 볼 수 있지요.

예로부터 자리잡은 왕조들은 각종행사에 그들의 권위를 위해 춤•음악을 동원함이 필수였지요.

당시로 가무歌舞 등을 직업삼아 했던 계층은 무업의 종사자인 巫였을 것으로,

나라에선 춤•노래•악기 등의 기본이 갖추어진 巫계층에서 선발했겠지요.

이에 巫들은,
권력에서 거리가 멀더라도 녹봉을 먹던 계층에도 편재되게 되었던 것이죠.

유교 이외는 음사난적으로 탄압하던 조선에 들어,
고려의 유습에 따라 국무당을 지정했던 '성수청星宿廳'을 설치하나,

유학자들의 지속적인 상소로 소리없이 사라지고,
이후로 편재한 '재인청才人廳(신청神廳)'에 巫들이 다시 소속되어, 나라의 교육과 통제를 받게 되었죠.

역사에 기록이 미미하더라도,
巫들은 민초들의 신앙으로 없앴수 없는 필요 악이 었으니,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도 뿌리를 뽑지 못하고 관리감독을 계속 한 것이죠.

아마도,'척尺'이라는 기예인들의 족보를 파보면,
대개가 무당의 후손이지 않나 하지요.

[샤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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