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과 샤머니즘 (5)편
아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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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7
샤먼과 샤머니즘 (5)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 최충헌전(1149~1219)’에, 모든 기종妓種은 본디 '유기장柳器匠'의 집에서 난다~라는 기록도 있지요.
이 글은,
척尺들만이 지닌 재주인 춤•노래•악기 등, 각기 지닌 특기(기예)를 말하던 '기종妓種'에, 기생妓生을 포함시키는 기록이죠.
삼국시대의 기예인들인 '척尺'이 왕건의 고려에 들어 노비가 되었고, ~그 중에 어여쁜 여인을 골라, 춤과 노래를 연습시켜 고려여악高麗女樂을 만들었다~고 했다.
허수아비 왕을 모시던 고려 무신정권이
사사로이 여악을 잔치에 동원하면서 기생문화가 생겨나고,
여악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여인들이 조선에 들어 생긴 말인 '기생妓生:이 되었다는 것이죠.
어쨌건, 천민들의 혼인대상은 천민이었으니,
'척尺'들은 집단 내의 혼인을 통해 돈벌이인 재주를 전승하는 혈연집단을 형성하였고,
'고려사'는 그 혈연집단의 대표적 생업이었던 유기柳器(버들 고리짝)를 내세워 '유기장柳器匠'의 집'이라 서술한 것이죠.
또한,
생업이었던 유기柳器가 아닌 기종妓種을 내세우니,
조선에 들어 척자尺者들은 '기종妓種'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불리고 있었음도 유추할 수 있지요.
나아가, 쉽게 이동하는 소규모가 아니라,
내세울만한 세를 형성했기에,
기술을 전수해주는 제일 어른인 류기장柳器匠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음도 알 수 있지요.
뭉친 척자尺者들의 혈연집단은,
두레형식의 '계契'를 조직하였으니,
훗날 '무계巫契'의 유래가 이쯤인가 하지요.
조선 영조때,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設'을 보면, 척자尺者들을 옛 이야기로 서술한다.
우리나라 기생의 종류(기종妓種)는 모두 양수척揚水尺에서 나왔으니, 양수척이라는 것은 '류기장 柳器匠'이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공격할 때,
유종遺種 중에도 가장 견제하기 어려운 자者들로,
그들에게는 관적貫籍과 부역賦役이 없고,
수초水草를 따라다니기 좋아하여,
아무 때나 이사를 자주하고,
사냥과 유기柳器를 만들어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고 했다.
'성호사설'은 실사구시하는 조선의 백과사전이라,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妓生이 보편화 되었던 시절에,
기생의 족보를 척尺으로 기록한 것이지요.
당시에 기생은 등급이 있었으니,
어전에 나가 가무를하는 일패ㅡ牌,
관가나 재상 집에 출입하는 이패二牌,
일반인 상대의 창기娼妓라 하는 삼패三牌인바,
기생은 천인으로 기적妓籍에 등록해야 했지요.
또한,
'척尺'들은 다들 재료비가 안 드는 생활용품인 버들고리(고리짝)를 만들며, 호패도 없이 소규모로 떠돌았음도 알 수 있지요.
어쨌거나 춤•노래•악기연주 등,
그 재주는 어디서 나와 전승 되어 왔을까요?
[샤먼뉴스]
이 글은,
척尺들만이 지닌 재주인 춤•노래•악기 등, 각기 지닌 특기(기예)를 말하던 '기종妓種'에, 기생妓生을 포함시키는 기록이죠.
삼국시대의 기예인들인 '척尺'이 왕건의 고려에 들어 노비가 되었고, ~그 중에 어여쁜 여인을 골라, 춤과 노래를 연습시켜 고려여악高麗女樂을 만들었다~고 했다.
허수아비 왕을 모시던 고려 무신정권이
사사로이 여악을 잔치에 동원하면서 기생문화가 생겨나고,
여악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여인들이 조선에 들어 생긴 말인 '기생妓生:이 되었다는 것이죠.
어쨌건, 천민들의 혼인대상은 천민이었으니,
'척尺'들은 집단 내의 혼인을 통해 돈벌이인 재주를 전승하는 혈연집단을 형성하였고,
'고려사'는 그 혈연집단의 대표적 생업이었던 유기柳器(버들 고리짝)를 내세워 '유기장柳器匠'의 집'이라 서술한 것이죠.
또한,
생업이었던 유기柳器가 아닌 기종妓種을 내세우니,
조선에 들어 척자尺者들은 '기종妓種'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불리고 있었음도 유추할 수 있지요.
나아가, 쉽게 이동하는 소규모가 아니라,
내세울만한 세를 형성했기에,
기술을 전수해주는 제일 어른인 류기장柳器匠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음도 알 수 있지요.
뭉친 척자尺者들의 혈연집단은,
두레형식의 '계契'를 조직하였으니,
훗날 '무계巫契'의 유래가 이쯤인가 하지요.
조선 영조때,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設'을 보면, 척자尺者들을 옛 이야기로 서술한다.
우리나라 기생의 종류(기종妓種)는 모두 양수척揚水尺에서 나왔으니, 양수척이라는 것은 '류기장 柳器匠'이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공격할 때,
유종遺種 중에도 가장 견제하기 어려운 자者들로,
그들에게는 관적貫籍과 부역賦役이 없고,
수초水草를 따라다니기 좋아하여,
아무 때나 이사를 자주하고,
사냥과 유기柳器를 만들어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고 했다.
'성호사설'은 실사구시하는 조선의 백과사전이라,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妓生이 보편화 되었던 시절에,
기생의 족보를 척尺으로 기록한 것이지요.
당시에 기생은 등급이 있었으니,
어전에 나가 가무를하는 일패ㅡ牌,
관가나 재상 집에 출입하는 이패二牌,
일반인 상대의 창기娼妓라 하는 삼패三牌인바,
기생은 천인으로 기적妓籍에 등록해야 했지요.
또한,
'척尺'들은 다들 재료비가 안 드는 생활용품인 버들고리(고리짝)를 만들며, 호패도 없이 소규모로 떠돌았음도 알 수 있지요.
어쨌거나 춤•노래•악기연주 등,
그 재주는 어디서 나와 전승 되어 왔을까요?
[샤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