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산신제 문서

대한제국시기부터 2008년까지 죽령산신제와 관련된 기록들로서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竹嶺山神堂祭官分定記)』, 『죽령산제홀기(竹嶺山祭笏記)』, 『치성문(致誠文)』 등 3종이며 모두 필사본이다. 이들 기록은 현재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3리 노인정에 보관되어 있다.
정의
대한제국시기부터 2008년까지 죽령산신제와 관련된 기록들로서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竹嶺山神堂祭官分定記)』, 『죽령산제홀기(竹嶺山祭笏記)』, 『치성문(致誠文)』 등 3종이며 모두 필사본이다. 이들 기록은 현재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3리 노인정에 보관되어 있다.
글쓴이
오문선
정의대한제국시기부터 2008년까지 죽령산신제와 관련된 기록들로서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竹嶺山神堂祭官分定記)』, 『죽령산제홀기(竹嶺山祭笏記)』, 『치성문(致誠文)』 등 3종이며 모두 필사본이다. 이들 기록은 현재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3리 노인정에 보관되어 있다.
정의대한제국시기부터 2008년까지 죽령산신제와 관련된 기록들로서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竹嶺山神堂祭官分定記)』, 『죽령산제홀기(竹嶺山祭笏記)』, 『치성문(致誠文)』 등 3종이며 모두 필사본이다. 이들 기록은 현재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3리 노인정에 보관되어 있다.
참조[다자구할머니](/topic/다자구할머니)죽령산신당죽령산신제
참고문헌죽령국행제조사연구 (이창식․안상경, 박이정, 2003)
참조[다자구할머니](/topic/다자구할머니)죽령산신당죽령산신제
참고문헌죽령국행제조사연구 (이창식․안상경, 박이정, 2003)
내용『죽령산제홀기』는 산신제의 절차와 [축문](/topic/축문)을 기록한 것으로 절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죽령산신제의 절차는 세종대에 편찬한 오례의(五禮儀) 부록 제산천의(諸山薦議) 행례와 일치하며, 향교에서 봄․가을로 거행하는 행례와도 유사하다.

죽령산제홀기에는 죽령산신제의 축문을 쓰는 법도 기록되어 있다. ‘식제축문(式祭祝文)’이란 제목이 달린 이 기록은 일반적인 축문의 경우와 같이 제사일자와 국왕이 신하를 보내어 고한다는 내용, 축원 등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식제축문’이 있는데, 이 기록에는 먼저 소개된 축문에서 국왕이란 표기 대신 황제를 쓰고 있다. 이는 대한제국기에 작성된 것으로, 1908년 국가의 공식적인 제사가 폐지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축문으로 보인다. 청주대학교 박물관에는 1902년에 작성된 축문이 소장되어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있다. 1902년 축문에는 죽령국행제의 행례를 위해 황제가 보낸 신하로 통정대부, 단양군수, 영춘군수가 소개되어 있다. 이 또한 국가의 공식 제사가 폐지되기 이전에 행해졌던 죽령국행제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국왕을 대신하여 지방관이 국행제였던 죽령국행제를 거행하던 모습을 보여준다.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는 제사 때마다 산신제홀기에 의거하여 [제관](/topic/제관) 등의 역할과 그것을 맡은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2008년 춘계제향의 경우 [초헌](/topic/초헌)관(初獻官), [아헌](/topic/아헌)관(亞獻官), [종헌](/topic/종헌)관(終獻官), 집례(集禮), 대축(大祝), 알자(謁者), 봉향(奉香), 봉로(奉爐), 봉작(封爵), 전작(奠爵), 사준(司罇) 등의 역할과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은 단양군수, 단양군의회의장, 단양문화원장 등 단양군의 기관장이나 공무원, [마을](/topic/마을)이장 등이 맡는 경우가 많다.

『치성문』은 죽령국행제의 대상이 되는 신령의 신격(神格), 제일의 선정, 의례형식, 의례의 참여범위, [제물](/topic/제물)의 정도, 금기사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을유년 정월의 고유제에 비용을 추렴한 마을 및 마을 사람들의 명단과 이들이 낸 금액을 각각 적고 있다. 또한 1948년 중수재건기로,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른 죽령산신당 사우를 춘삼월에 중수재건한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중수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낸 비용과 명단을 기록하였다.

뒷부분에는 1960년 춘계제향에 성금을 낸 죽령역장, 1960년 추계제향에 성금을 낸 죽령선로수장이 도료 5통, 신축년 3월 춘계제향에 경북 춘양 제일기업주식회사 문학술, 1964년 춘계 영양산업주식회사 단양출장소, 1966년 추계 단양군수, 1967년 춘계 단양산업 회장, 죽령역장, 1968년 춘계 영주읍 이동석, 죽령역장, 1969년 3월 영양산업, 줄경분교 교사 김용갑, 1969년 추계 죽령역장 등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가 부기되어 있다. 이들은 이 지역과 관련 있는 죽령역장, 학교교사, 기관장 등이며, 주변지역의 기업인 등이다. 직함이 표기되지 않은 인물은 출향인사일 가능성이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내용『죽령산제홀기』는 산신제의 절차와 [축문](/topic/축문)을 기록한 것으로 절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죽령산신제의 절차는 세종대에 편찬한 오례의(五禮儀) 부록 제산천의(諸山薦議) 행례와 일치하며, 향교에서 봄․가을로 거행하는 행례와도 유사하다.

죽령산제홀기에는 죽령산신제의 축문을 쓰는 법도 기록되어 있다. ‘식제축문(式祭祝文)’이란 제목이 달린 이 기록은 일반적인 축문의 경우와 같이 제사일자와 국왕이 신하를 보내어 고한다는 내용, 축원 등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식제축문’이 있는데, 이 기록에는 먼저 소개된 축문에서 국왕이란 표기 대신 황제를 쓰고 있다. 이는 대한제국기에 작성된 것으로, 1908년 국가의 공식적인 제사가 폐지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축문으로 보인다. 청주대학교 박물관에는 1902년에 작성된 축문이 소장되어 있어 서로 비교할 수 있다. 1902년 축문에는 죽령국행제의 행례를 위해 황제가 보낸 신하로 통정대부, 단양군수, 영춘군수가 소개되어 있다. 이 또한 국가의 공식 제사가 폐지되기 이전에 행해졌던 죽령국행제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국왕을 대신하여 지방관이 국행제였던 죽령국행제를 거행하던 모습을 보여준다.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는 제사 때마다 산신제홀기에 의거하여 [제관](/topic/제관) 등의 역할과 그것을 맡은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2008년 춘계제향의 경우 [초헌](/topic/초헌)관(初獻官), [아헌](/topic/아헌)관(亞獻官), [종헌](/topic/종헌)관(終獻官), 집례(集禮), 대축(大祝), 알자(謁者), 봉향(奉香), 봉로(奉爐), 봉작(封爵), 전작(奠爵), 사준(司罇) 등의 역할과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은 단양군수, 단양군의회의장, 단양문화원장 등 단양군의 기관장이나 공무원, [마을](/topic/마을)이장 등이 맡는 경우가 많다.

『치성문』은 죽령국행제의 대상이 되는 신령의 신격(神格), 제일의 선정, 의례형식, 의례의 참여범위, [제물](/topic/제물)의 정도, 금기사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을유년 정월의 고유제에 비용을 추렴한 마을 및 마을 사람들의 명단과 이들이 낸 금액을 각각 적고 있다. 또한 1948년 중수재건기로,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른 죽령산신당 사우를 춘삼월에 중수재건한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중수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낸 비용과 명단을 기록하였다.

뒷부분에는 1960년 춘계제향에 성금을 낸 죽령역장, 1960년 추계제향에 성금을 낸 죽령선로수장이 도료 5통, 신축년 3월 춘계제향에 경북 춘양 제일기업주식회사 문학술, 1964년 춘계 영양산업주식회사 단양출장소, 1966년 추계 단양군수, 1967년 춘계 단양산업 회장, 죽령역장, 1968년 춘계 영주읍 이동석, 죽령역장, 1969년 3월 영양산업, 줄경분교 교사 김용갑, 1969년 추계 죽령역장 등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가 부기되어 있다. 이들은 이 지역과 관련 있는 죽령역장, 학교교사, 기관장 등이며, 주변지역의 기업인 등이다. 직함이 표기되지 않은 인물은 출향인사일 가능성이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의의죽령산신제 문서인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 『죽령산제홀기』, 『치성문』 등의 기록은 죽령국행제의 대상이 되는 신령의 신격(神格), 제일의 선정, 의례형식, 의례의 참여범위, [제물](/topic/제물)의 정도, 금기사항, 비용의 추렴, 중수, [제관](/topic/제관)의 명단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기록물은 조선시대 국행제였던 죽령산신제의 민간화된 양상을 살필 수 있는 학술자료로서 의의를 갖는다.
의의죽령산신제 문서인 『죽령산신당제관분정기』, 『죽령산제홀기』, 『치성문』 등의 기록은 죽령국행제의 대상이 되는 신령의 신격(神格), 제일의 선정, 의례형식, 의례의 참여범위, [제물](/topic/제물)의 정도, 금기사항, 비용의 추렴, 중수, [제관](/topic/제관)의 명단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기록물은 조선시대 국행제였던 죽령산신제의 민간화된 양상을 살필 수 있는 학술자료로서 의의를 갖는다.
집문당한국무속연구김태곤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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